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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ible 성경 다시 읽기

2. 제11계명 ‘금주·금연’? (술과 담배, 그리고 구원. 시리즈)

“금주, 금연은 성경에도 없는데 왜 한국 교회만 유독 난리인가요?”

 

유럽이나 미국의 목사님들은 맥주 한잔하며, 혹은 담배 한 대 태우며 성경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꼽히는 칼 바르트는 유명한 파이프 담배 애호가이자 애주가였습니다.

“이 메릴랜드 담배는 내가 ‘로마서 강해’를 통과하는 두 번의 험난한 여정(1판과 2판 집필) 내내 나의 곁을 동행해 주었다.”
(칼 바르트, [로마서 강해] 탈고 후)

그런데 왜 유독 한국 교회만 이럴까요?

 

1. 선교사들의 초강수: “조선 남자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구한(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조선 남자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라 잃은 슬픔과 가난, 고된 노동 때문에 남자들이 시름을 잊으려 술독에 빠져 살았거든요.(+도박)
이 때문에 선교사들이 조선 남자들이 일을 마칠 저녁 즈음에 전도를 나가 말씀을 전해도,
제정신이 아닌 그들에게는 한 마디도 먹히질 않았습니다.
초창기 한국 기독교의 구성원 대부분이 여성과 아이들이었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선교사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민족을 살리려면 술부터 끊게 해야겠다.”

그래서 교회법으로 강력한 금주/금연령을 내렸습니다.
즉, 이건 신학적인 이유라기보다 ‘전도 계획’ 과 ‘사회 개혁 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 참고 문헌: 옥성득,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기원>

 

2. ‘흥’의 민족에게 씌워진 율법의 굴레

우리 민족은 원래 ‘흥’과 ‘한’의 민족입니다.
일하다가도 막걸리 한잔에 노래 한 자락 뽑으며 시름을 잊던 문화가 있었습니다.(과거 임금님들도 막걸리를 사랑했다죠?)
그런데 일제 강점기 쌀 수탈 제도와 맞물린 술 문화의 타락, 그리고 교회의 엄격한 금욕주의가 합쳐지면서 “술=악마의 물”이라는 공식이 탄생했습니다.

 

3. 유교적 체면 문화와의 잘못된 만남

여기에 한국 특유의 ‘유교적 체면’이 더해집니다.
“점잖은 사람이 체통 없이…”라는 문화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 “거룩한 장로가 체통 없이…”로 변질된 거죠.

우리는 지금 성경 말씀을 행하는 걸까요?
아니면 100년 전 선교사들의 비상조치와 유교적 체면을 ‘하나님의 법’인 양 착각하며 살고 있는 걸까요?

민족적 전통과 역사적 배경을 잊은 채 맹목적으로 굳어진 이 ‘K-기독교 신(新)율법’은, 지금 수많은 젊은이와 초신자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껍데기(형식)를 붙잡느라 가장 중요한 알맹이(자유와 사랑)를 버리는 꼴입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대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자유일까요?
다음 <3. 진짜 ‘빌런’은 누구?>에서 명쾌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강리바이블러의 아바타

글쓴이 강리바이블러

강경석 목사 | 예당교회 담임, Re:Bible 총괄 디렉터 감리교신학대학교 Ph.D 수료. 딱딱한 신학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며, 성서를 입체적으로 읽고 삶으로 살아내는 여정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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