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ible 성경 다시 읽기

이사야 1:15 “종교라는 환상과 정의의 부재”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이사야 1:15) 종교는 종종 인간의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편리한 도피처로 기능합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의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열심히 제물을 바치며 예배와 절기, 기도의 예전(禮典)을 성실히 지켜갔습니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종교적 열심을 철저히 혐오하셨습니다. 그들의 성실한 외적 헌신은 삶의 내적인 타락을 은폐하는 도구로… 이사야 1:15 “종교라는 환상과 정의의 부재” 계속 읽기

민주주의는 십자가가 아니다: 심판자가 된 교회

다수결은 하나님의 방식이었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민주주의의 ‘흔적’은 사도행전에서 일곱 집사를 선출할 때입니다. 사도행전 6:3 (NKRV) 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이 말 이후에 초대교회 교인들이 기뻐하며 일곱 집사를 세우는 장면만 나오기 때문에, 사실은 정확하게는 어떤 방법으로 선출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짐작하기로는,… 민주주의는 십자가가 아니다: 심판자가 된 교회 계속 읽기

달란트 유감 시리즈 ⑥ 예수님도 사실 ‘1달란트 흙수저’였다?! 그분이 남긴 진짜 이윤

달란트 비유 6부작의 대단원! 세상의 기준으로는 철저한 1달란트 흙수저였던 예수님이 어떻게 세상을 구원하셨을까요? 능력주의를 박살 내는 십자가의 은혜와 달란트 비유의 진짜 결론을 맺습니다. 어느덧 ‘달란트 비유 팩트 체크’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난 5편의 여정을 통해 달란트가 타고난 재능도, 직업도, 영적 스펙도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이 모든 오역의 사슬을 끊어낼 마지막이자 가장 치명적인 질문을… 달란트 유감 시리즈 ⑥ 예수님도 사실 ‘1달란트 흙수저’였다?! 그분이 남긴 진짜 이윤 계속 읽기

예정론 더 보기① “전통적 예정론: 절대 주권의 그림자와 숙명론의 감옥”

예정론은 루터와 칼뱅 이후 개신교 전통의 핵심적인 논의였으며, 지금까지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 미완의 주제입니다. 아마도 성서에 관한 결정적인 고고학적 발견이 있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신학적 난제로 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해묵은 문제를 다시 들춰내어 애꿎은 논란과 불화를 자초하는 이유는, 예정론이야말로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신학의 가장 기초적인 문법들을… 예정론 더 보기① “전통적 예정론: 절대 주권의 그림자와 숙명론의 감옥” 계속 읽기

예정론 ① “하나님의 계획과 나의 자리”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예정론’. 전통적인 관점과 오해를 넘어, 예정론의 진짜 의미와 가치를 총 5회에 걸쳐 찾아가 보겠습니다. 이 글은 [질문하는 신학]에도 동시 연재됩니다. 여기서는 읽기 쉬운 축약본으로, [질문하는 신학]에서는 좀 더 깊이 읽을 수 있는 글을 게재합니다. 보다 더 깊은 이해를 원하시는 분들은 [질문하는 신학]의 글들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예정론 ① “하나님의 계획과 나의 자리” 계속 읽기

미가 1:3 “무너지는 높은 곳, 그 이면의 애통함”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미가 1:3) 내가 견고하다고 믿었던 ‘높은 곳’들이, 실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화려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요새 뒤에 숨어, 자신들만의 우상을 숭배하며 그 풍요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높이며 쌓아 올린 그 ‘산당’들은 하나님의 강림 앞에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골짜기로 쏟아지는… 미가 1:3 “무너지는 높은 곳, 그 이면의 애통함” 계속 읽기

달란트 유감 시리즈 ⑤ 주인은 왜 하필 ‘돈’을 주고 떠났을까? 마태복음 25장의 진짜 타겟

달란트 비유가 자기계발서가 아닌 진짜 이유, 마태복음 24장과 26장 사이에 숨겨진 종말론적 맥락을 통해 비유의 진짜 타겟인 ‘본질과 비본질’의 싸움을 파헤칩니다. 지난 4편에서 우리는 성과주의에 물든 교회의 뼈아픈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자, 이제 이 길고 길었던 오역의 사슬을 끊고 진짜 본질을 마주할 시간입니다. 달란트가 개인의 재능이나 직업이 아니라면, 마태복음 25장에서 주인은 도대체 왜 종들에게 평생 만져보지도… 달란트 유감 시리즈 ⑤ 주인은 왜 하필 ‘돈’을 주고 떠났을까? 마태복음 25장의 진짜 타겟 계속 읽기

교회의 언어 바꾸기 -2편

내가 믿는 것은 하나님인가, 투영된 나 자신인가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자유를 받았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흙으로 창조하시고 그의 코에 하나님의 영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셨고, 그로 인해서 인간은 “생령(살아있는 영)”이 됩니다. 곧 살아 있는(생; 生 – 육신적 기반) 존재임과 동시에 영혼을 가진(영; 靈 – 영혼과 정신적 기반)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인간이 온전히 하나님처럼 완벽한… 교회의 언어 바꾸기 -2편 계속 읽기

나훔 3:11 “욕망과 권력의 허무함”

“너도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구하리라” (나훔 3:11) 스스로 영원할 것이라 믿고 취해있던 영광은, 삶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속수무책으로 무너뜨립니다.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내가 쥐고 있는 이 알량한 성공과 안정감이. 통장 잔고, 직장의 타이틀, 사람들의 인정. 우리는 종종 나의 스펙과 능력, 재력이라는 달콤한 취기에 깊이 빠져 살아갑니다. 그것이 내 삶을 영원히… 나훔 3:11 “욕망과 권력의 허무함” 계속 읽기

성경은 완벽하고 오류가 없다는 폭력에 관해 – 도입

기독교인의 기고만장함의 근원, 성경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이 끝없이 교만한 이유를 뒤집어 보면, 성경을 코란(쿠란)처럼 대한다는 공통된 특징이 나옵니다. 성경은 낱자와 받침, 점 하나까지 일점일획 오류와 오기가 없는 완벽한 책, 하늘의 글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죠. 이걸 성경 무오설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기독교보다는 이슬람교에서 더 확고하게 받아들여지는 “설” 입니다. 코란은 대예언자 무하매드가 알라에게 받은 글이라고 해서, 그 내용은 물론,… 성경은 완벽하고 오류가 없다는 폭력에 관해 – 도입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