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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ible 성경 다시 읽기

교회의 언어 바꾸기 -4편

십자가의 언어를 잃어버린 타락한 교회, 그리고 회복 교회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은 분명하게 잘못된 일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단순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저지르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실수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실수를 넘어서는 근원적 ‘죄’]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스스로 주인이 되려 하는 상태’라는 훨씬 더 근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죄악들에 무신경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의 언어 바꾸기 -4편 계속 읽기

교회의 언어 바꾸기 -3편

십자가, 완전한 ‘무(無)’로의 도약과 자기 비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던져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와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철저히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둘, ‘완전한 인간’과 ‘죽음’이 우리의 신앙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우선 ‘인간 예수’에 관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교회의 언어 바꾸기 -3편 계속 읽기

예정론 더 보기③ “예정론의 위치: 선민사상의 독단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솔직히 고백하자면, 예정론 그 자체는 현대 신학의 사조 안에서 그리 대단히 중요한 논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신학의 가장 기초적인 입문 과정일 수도 있고, 혹은 인간의 이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할 사변적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정론의 ‘위치’를 이토록 세세하게 따져 물어야 하는 이유는, 이 교리가 한국 교회 안에서… 예정론 더 보기③ “예정론의 위치: 선민사상의 독단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계속 읽기

예정론 ③ “나만 복 받는 신앙에서 세상과 함께하는 책임으로”

  예정론은 나만 아는 비밀번호가 아닙니다 예정론은 사실 신학적으로 아주 깊이 들어가면 끝이 없는 복잡한 주제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냥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예정론이 잘못 쓰이면 우리를 ‘우리끼리만 선택받았다’는 독단적인 생각에 갇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선택’이 독이 될 때: 선민사상의 위험성 한국… 예정론 ③ “나만 복 받는 신앙에서 세상과 함께하는 책임으로” 계속 읽기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기리지 않고서는, 한국교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저는 작은 사람이라 별 영향도, 도움도 못 드렸지만, 그래도 곳곳에서 세월호와 함께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불합리함과 잔인함을 종종 목격했습니다. 유가족에게 가장 앞장서서 상처를 준 핵심 인물들 중 다수가 기독교의 이름을 걸고 있었고, 이에 동조하는 주류 개신교인들의 목소리도 너무나 컸습니다. 제가 직접 들은 그들의 논리는 결국 돈과 정치였습니다. 돈 받았으니 그만해라, 정치적으로 이용 말고 그만해라가…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기리지 않고서는, 한국교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계속 읽기

예정론 더 보기② “현대의 예정론: 그리스도 사건과 실존적 응답의 하모니”

무엇보다 현대 예정론의 지평을 논함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이름은 바로 칼 바르트일 것입니다. 신정통주의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그는, 전통적 예정론이 가졌던 ‘누가 구원받고 유기되는가’라는 폐쇄적인 질문을 거부하고 예정론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예정이란 인간의 운명을 가르는 산술적 계산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일한 인격과 사건에 관한 기록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온… 예정론 더 보기② “현대의 예정론: 그리스도 사건과 실존적 응답의 하모니” 계속 읽기

이사야 1:19 “행위로 증명되는 존재의 혁명”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이사야 1:19) 관념을 부수는 삶의 무게   현대인들은 종종 믿음을 내면의 심리적 안정이나 지적인 동의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신을 가진 실존적 존재이며, 삶은 생존하고 사랑하며 연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육신의 행위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삶의 치열한 한가운데서 행동과 분리된 믿음은 영혼 없는 몸처럼 죽은 상태에 머뭅니다.  … 이사야 1:19 “행위로 증명되는 존재의 혁명” 계속 읽기

달란트 유감 시리즈 +@ 달란트 비유가 현실의 우리들에게 던지는 종말론적 의미

달란트 비유의 배경이 ‘종말’이라면,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허황된 시한부 종말론을 깨부수고, 오늘 하루의 일상 속에서 달란트(생명)를 남기는 실존적 방법을 팩트 체크합니다. 6부작으로 마무리된 달란트 시리즈에 피드백 중, 특히 5편에서 다룬 종말론적 맥락에 대해 이런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목사님, 달란트 비유가 세상의 끝을 앞둔 경고장인 건 알겠는데, 당장 내일 아침 지옥철… 달란트 유감 시리즈 +@ 달란트 비유가 현실의 우리들에게 던지는 종말론적 의미 계속 읽기

예정론 ② “예수님이라는 선물”

“누가 구원받을까?”에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로 21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칼 바르트는 예정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전의 예정론이 “하나님이 누구를 구원하고 누구를 버리실까?”라는 대상 찾기에 집중했다면, 바르트는 예정론의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가장 먼저 계획(예정)하신 것은 우리 개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바로 독생자 예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 안에서 우리 인류… 예정론 ② “예수님이라는 선물” 계속 읽기

이사야 1:15 “종교라는 환상과 정의의 부재”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이사야 1:15) 종교는 종종 인간의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편리한 도피처로 기능합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의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열심히 제물을 바치며 예배와 절기, 기도의 예전(禮典)을 성실히 지켜갔습니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종교적 열심을 철저히 혐오하셨습니다. 그들의 성실한 외적 헌신은 삶의 내적인 타락을 은폐하는 도구로… 이사야 1:15 “종교라는 환상과 정의의 부재”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