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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ible 성경 다시 읽기

예정론 더 보기③ “예정론의 위치: 선민사상의 독단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솔직히 고백하자면, 예정론 그 자체는 현대 신학의 사조 안에서 그리 대단히 중요한 논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신학의 가장 기초적인 입문 과정일 수도 있고, 혹은 인간의 이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할 사변적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정론의 ‘위치’를 이토록 세세하게 따져 물어야 하는 이유는, 이 교리가 한국 교회 안에서… 예정론 더 보기③ “예정론의 위치: 선민사상의 독단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계속 읽기

예정론 ③ “나만 복 받는 신앙에서 세상과 함께하는 책임으로”

  예정론은 나만 아는 비밀번호가 아닙니다 예정론은 사실 신학적으로 아주 깊이 들어가면 끝이 없는 복잡한 주제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냥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예정론이 잘못 쓰이면 우리를 ‘우리끼리만 선택받았다’는 독단적인 생각에 갇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선택’이 독이 될 때: 선민사상의 위험성 한국… 예정론 ③ “나만 복 받는 신앙에서 세상과 함께하는 책임으로” 계속 읽기

예정론 더 보기② “현대의 예정론: 그리스도 사건과 실존적 응답의 하모니”

무엇보다 현대 예정론의 지평을 논함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이름은 바로 칼 바르트일 것입니다. 신정통주의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그는, 전통적 예정론이 가졌던 ‘누가 구원받고 유기되는가’라는 폐쇄적인 질문을 거부하고 예정론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예정이란 인간의 운명을 가르는 산술적 계산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일한 인격과 사건에 관한 기록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온… 예정론 더 보기② “현대의 예정론: 그리스도 사건과 실존적 응답의 하모니” 계속 읽기

예정론 ② “예수님이라는 선물”

“누가 구원받을까?”에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로 21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칼 바르트는 예정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전의 예정론이 “하나님이 누구를 구원하고 누구를 버리실까?”라는 대상 찾기에 집중했다면, 바르트는 예정론의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가장 먼저 계획(예정)하신 것은 우리 개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바로 독생자 예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 안에서 우리 인류… 예정론 ② “예수님이라는 선물” 계속 읽기

예정론 더 보기① “전통적 예정론: 절대 주권의 그림자와 숙명론의 감옥”

예정론은 루터와 칼뱅 이후 개신교 전통의 핵심적인 논의였으며, 지금까지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 미완의 주제입니다. 아마도 성서에 관한 결정적인 고고학적 발견이 있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신학적 난제로 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해묵은 문제를 다시 들춰내어 애꿎은 논란과 불화를 자초하는 이유는, 예정론이야말로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신학의 가장 기초적인 문법들을… 예정론 더 보기① “전통적 예정론: 절대 주권의 그림자와 숙명론의 감옥” 계속 읽기

예정론 ① “하나님의 계획과 나의 자리”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예정론’. 전통적인 관점과 오해를 넘어, 예정론의 진짜 의미와 가치를 총 5회에 걸쳐 찾아가 보겠습니다. 이 글은 [질문하는 신학]에도 동시 연재됩니다. 여기서는 읽기 쉬운 축약본으로, [질문하는 신학]에서는 좀 더 깊이 읽을 수 있는 글을 게재합니다. 보다 더 깊은 이해를 원하시는 분들은 [질문하는 신학]의 글들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예정론 ① “하나님의 계획과 나의 자리” 계속 읽기

참혹한 역사 앞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하)

십자가, 철학의 우상을 깨고 역사에 뛰어든 하나님. 하나님은 ‘보험’도, ‘부동의 동자’도 아니다. [지난 상편 요약] – 하나님의 침묵: 참혹한 역사 속 하나님의 침묵은 방관이 아니라, 인간에게 강제적 조종이 아닌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신 필연적 결과. – 규모의 오류: 거대한 악(대형 참사)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억지로 개입하셔야 한다는 것은 순환논리이며, 고통은 규모가 아닌 실존의 문제. – 훼손된 자유:… 참혹한 역사 앞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하) 계속 읽기

참혹한 역사 앞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상)

참혹한 비극 앞,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거대한 악에만 개입하라는 ‘규모의 오류’와 훼손된 자유에 대하여.   왜 침묵하시는가? 예전에 대화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대체 왜 이런 일들에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거지?”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의 침묵은 단련의 때로 해석되곤 한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철저히 홀로 버려진 듯했던 시간처럼 말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참혹한 역사 앞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상)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