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은 나만 아는 비밀번호가 아닙니다
예정론은 사실 신학적으로 아주 깊이 들어가면 끝이 없는 복잡한 주제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냥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예정론이 잘못 쓰이면 우리를 ‘우리끼리만 선택받았다’는 독단적인 생각에 갇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선택’이 독이 될 때: 선민사상의 위험성
한국 교회의 많은 분이 “나는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물론 그것은 귀한 은혜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지나치게 치우치면, 선택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으니 괜찮아, 저들은 버림받은 거야”라는 식의 차가운 선민사상은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아픔 앞에서 교회가 보여준 사회적 책임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선택받았고 복 받았다”는 기쁨에만 취해 있다 보니, 정작 세상이 고통받을 때 교회가 제 역할을 못 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우리 사회를 아프게 했던 세월호 사건 같은 비극 앞에서도, 어떤 이들은 이성적인 고민 없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는 신앙이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한 방’에 끝나는 요행이 아닌 ‘훈련’
어떤 분들은 “한 번 선택받았으니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주여 주여”라고 입으로만 외치는 사람이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참된 믿음은 입술의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끊임없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만히 앉아 구원만 기다리는 로봇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전할 책임 있는 파트너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만의 신앙 고백을 만드세요
예정론에 정답은 하나가 아닐 수 있습니다. 신학자나 목사님의 설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여러분 자신이 성경 앞에서 고민하고 삶 속에서 체험한 여러분의 목소리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책임을 다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늘 무지한 맹목적 신앙에서 벗어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된 자유를 누리며, 오늘 하루도 내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아름다운 ‘예정된 삶’의 모습입니다.
이 글이 예정론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삶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다음 장에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