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ible 성경 다시 읽기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기리지 않고서는, 한국교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저는 작은 사람이라 별 영향도, 도움도 못 드렸지만, 그래도 곳곳에서 세월호와 함께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불합리함과 잔인함을 종종 목격했습니다. 유가족에게 가장 앞장서서 상처를 준 핵심 인물들 중 다수가 기독교의 이름을 걸고 있었고, 이에 동조하는 주류 개신교인들의 목소리도 너무나 컸습니다. 제가 직접 들은 그들의 논리는 결국 돈과 정치였습니다. 돈 받았으니 그만해라, 정치적으로 이용 말고 그만해라가 대부분의 핵심 논리입니다.

 

이 이야기는 더 해 봤자 입과 귀만 아플 뿐이지만, 기독교인들의 논리가 세속적인 돈과 정치의 수준에 멈춰 있다는 것에서 정말로 깊은 참담함과 슬픔을 느낍니다. 그들의 삶의 시각이 오직 그런 것들로만 가득 차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회복이니 개혁이니 하는 말들도 가당치 않을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치 감각은 철저하게 약자의 편에 서서 불의를 참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무조건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편을 들라는 의미가 아니라, 약자는 약하기 때문에 부당하게 당해야만 하는 구조적 불합리를 타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명시하는 바도 이와 같습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레위기 19:15)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언 14:31)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스가랴 7:10)

 

성경은 이처럼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엄정한 잣대, 즉 ‘공의’를 분명히 요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은 늘 억울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해 깊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기울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잘못된 편애가 아니라 약자를 살리기 위한 ‘인애의 정의’입니다.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똑같이” 대우하는 것만으로는 고통받는 자들을 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세상이 말하는 공정과 평등은 분명 중요한 보편적 가치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숫자로 나누고 기계적 평등만을 내세우는 세속적 논리로는 세상의 깊은 슬픔을 온전히 치유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가치는 세상의 평등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고 초월하는 데 있습니다.

기독교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것, 산 자가 죽어가는 자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 지극히 높은 존재가 가장 낮고 비천한 곳으로 하강하는 십자가의 사랑을 진정한 “보편의 가치”로 삼습니다. 이 자기 비움과 희생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구원사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불신앙을 의미합니다.

세월호는 권력과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한국 주류 개신교 일부의 민낯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이 참사 앞에서 드러난 우리의 부끄러운 정체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돌이키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말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부디 이 불신앙의 악한 시대가 속히 끝나길 기도합니다.

강리바이블러의 아바타

글쓴이 강리바이블러

강경석 목사 | 예당교회 담임, Re:Bible 총괄 디렉터 감리교신학대학교 Ph.D 수료. 딱딱한 신학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며, 성서를 입체적으로 읽고 삶으로 살아내는 여정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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