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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ible 성경 다시 읽기

교회의 언어 바꾸기 -4편

십자가의 언어를 잃어버린 타락한 교회, 그리고 회복 교회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은 분명하게 잘못된 일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단순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저지르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실수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실수를 넘어서는 근원적 ‘죄’]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스스로 주인이 되려 하는 상태’라는 훨씬 더 근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죄악들에 무신경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의 언어 바꾸기 -4편 계속 읽기

교회의 언어 바꾸기 -3편

십자가, 완전한 ‘무(無)’로의 도약과 자기 비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던져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와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철저히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둘, ‘완전한 인간’과 ‘죽음’이 우리의 신앙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우선 ‘인간 예수’에 관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교회의 언어 바꾸기 -3편 계속 읽기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기리지 않고서는, 한국교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저는 작은 사람이라 별 영향도, 도움도 못 드렸지만, 그래도 곳곳에서 세월호와 함께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불합리함과 잔인함을 종종 목격했습니다. 유가족에게 가장 앞장서서 상처를 준 핵심 인물들 중 다수가 기독교의 이름을 걸고 있었고, 이에 동조하는 주류 개신교인들의 목소리도 너무나 컸습니다. 제가 직접 들은 그들의 논리는 결국 돈과 정치였습니다. 돈 받았으니 그만해라, 정치적으로 이용 말고 그만해라가…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기리지 않고서는, 한국교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계속 읽기

미가 1:3 “무너지는 높은 곳, 그 이면의 애통함”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미가 1:3) 내가 견고하다고 믿었던 ‘높은 곳’들이, 실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화려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요새 뒤에 숨어, 자신들만의 우상을 숭배하며 그 풍요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높이며 쌓아 올린 그 ‘산당’들은 하나님의 강림 앞에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골짜기로 쏟아지는… 미가 1:3 “무너지는 높은 곳, 그 이면의 애통함” 계속 읽기

기독교인에게 중립은 없다 2: 정답을 독점한 종교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서론] 거룩한 결핍의 시작: 사랑이 허락한 틈 전통적 기독교 세계관에서 세계는 본질적으로 결핍과 회복의 순환관계를 가집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악(결핍)을 덮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 옷이란 어떤 동물을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완벽했던 세계에 ‘죽음’이라는 치명적 결핍을 야기했고, 아담과 하와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완벽함 속에 결핍, 곧 발타자르가 말했던 사랑의… 기독교인에게 중립은 없다 2: 정답을 독점한 종교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계속 읽기

나훔 1:15 “원수가 무너진 폐허 앞에서”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나훔 1:15) 원수가 무너진 폐허 앞에서 우리가 쥐어야 할 것은, 복수의 칼이 아니라 성찬의 잔입니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이들이 무너지면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달려가서 통쾌하게 밟아주고 싶어지죠.… 나훔 1:15 “원수가 무너진 폐허 앞에서” 계속 읽기

기독교인에게 중립은 없다 1

화려한 언변으로 치장해 중립을 마치 기독교 정신인 양 둔갑시켜도, 그건 그저 면피용 도덕적 알리바이이자 신학의 부재가 낳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중립은 결국 양비론입니다. 이는 불의한 권력에 면죄부를 주고, 비겁하게 침묵했던 자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꼴입니다. 본회퍼는 나치에 부역하고 방조하면서도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라며 도피했던 ‘중립적’ 교회를 향해, 그것은 “싸구려 은혜”라고 일갈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투투… 기독교인에게 중립은 없다 1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