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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ible 성경 다시 읽기

교회의 언어 바꾸기 -4편

십자가의 언어를 잃어버린 타락한 교회, 그리고 회복 교회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은 분명하게 잘못된 일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단순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저지르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실수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실수를 넘어서는 근원적 ‘죄’]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스스로 주인이 되려 하는 상태’라는 훨씬 더 근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죄악들에 무신경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의 언어 바꾸기 -4편 계속 읽기

미가 1:3 “무너지는 높은 곳, 그 이면의 애통함”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미가 1:3) 내가 견고하다고 믿었던 ‘높은 곳’들이, 실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화려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요새 뒤에 숨어, 자신들만의 우상을 숭배하며 그 풍요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높이며 쌓아 올린 그 ‘산당’들은 하나님의 강림 앞에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골짜기로 쏟아지는… 미가 1:3 “무너지는 높은 곳, 그 이면의 애통함” 계속 읽기

교회의 언어 바꾸기 -2편

내가 믿는 것은 하나님인가, 투영된 나 자신인가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자유를 받았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흙으로 창조하시고 그의 코에 하나님의 영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셨고, 그로 인해서 인간은 “생령(살아있는 영)”이 됩니다. 곧 살아 있는(생; 生 – 육신적 기반) 존재임과 동시에 영혼을 가진(영; 靈 – 영혼과 정신적 기반)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인간이 온전히 하나님처럼 완벽한… 교회의 언어 바꾸기 -2편 계속 읽기

[관상기도 2편] 흔들리는 실존 앞에서의 믿음: 부르짖기 전에 들어야 하는 이유

흔들리는 실존과 ‘듣는 기도’: 아브라함의 실패를 중심으로 믿음은 인간의 노력인가, 신의 은혜인가? 바르트의 ‘변증법적 사건’을 통해 능동적 믿음과 수동적 은혜의 충돌을 살피고, 아브라함의 실존적 삶을 통해 ‘듣는 기도’의 힘을 분석합니다.   지난 1편에서는 이기적 간구를 넘어선 신앙과 관상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믿음이 있어도 척박한 삶의 무게 앞에서 철저히 무너지고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관상기도 2편] 흔들리는 실존 앞에서의 믿음: 부르짖기 전에 들어야 하는 이유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