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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ible 성경 다시 읽기

3. 진짜 ‘빌런’은 누구? (술과 담배, 그리고 구원. 시리즈)

“술 담배가 덕이 안 된다고요? 진짜 ‘덕’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지난 글에서 한국 교회의 금주·금연 문화가 성경적 진리라기보다, 100년 전의 특수한 ‘사회 개혁 운동’과 유교적 체면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그럼 오늘부터 내 마음대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짜 ‘자유’인가요?”

이 질문에 교회는 십중팔구 이 구절을 들고나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린도전서 10:23-24)

네, 맞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않는 일을 절제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성숙한 자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아주 뼈 때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1. 그 ‘덕(德)’의 기준은 도대체 누가 세우는 걸까요?

누군가 교회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구원을 잃어버릴 만큼 막대한 영적 타격을 입나요?

종교개혁자 칼뱅을 비롯한 신학자들은 성경이 명확히 금지하거나 명령하지 않은 기호나 문화의 문제를 ‘아디아포라(Adiaphora, 덜 중요한 것들)’라고 불렀습니다.
구원과는 상관없는 각자의 자유 영역이라는 뜻입니다.

건강을 염려해 사랑으로 금연을 ‘권면’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아 사람을 적그리스도나 타락한 죄인인 양 몰아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2. 담배 연기보다 무서운 ‘정죄’의 죄

교회에 갓 나온 초신자 형제가 있습니다.
아직 술·담배를 못 끊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싶어 용기 내어 왔죠.
그런데 누군가 와서 쏘아붙입니다.
“당신 교회 나오면서도 아직 담배 피워? 믿음이 가짜네. 당장 끊어!”

이 말을 들은 형제는 깊은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납니다.
그리고 다시는 예수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자, 여기서 성경적으로 더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담배 피운 형제일까요, 아니면 그를 내쫓은 독설가일까요?

예수님은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리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마태복음 18:6)

당신의 그 ‘정의로운’ 한마디가, 한 영혼을 영영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사탄의 도구로 쓰인 겁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엔 담배 연기보다, 형제를 찌르는 당신의 혀가 훨씬 더 독합니다.
기호식품을 두고 남을 정죄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끔찍한 교만의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대하여 라가(쓸모없는 놈)라 하는 자는 (…)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2)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로마서 14:13)

담배 한 대 피우는 형제를 향해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정죄하는 행위야말로,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 남의 구원을 채점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3. 우리는 ‘재판관’이 아니라 ‘은혜의 유통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 은혜를 이웃과 나누며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지, 율법의 잣대로 남을 단죄하는 재판관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형제를 정죄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주는 것.
껍데기로 남을 판단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
그것이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진짜 ‘덕’이자 ‘자유’입니다.

강리바이블러의 아바타

글쓴이 강리바이블러

강경석 목사 | 예당교회 담임, Re:Bible 총괄 디렉터 감리교신학대학교 Ph.D 수료. 딱딱한 신학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며, 성서를 입체적으로 읽고 삶으로 살아내는 여정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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