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ible 기획 연재] 세상의 문화 앞에서 길을 잃은 한국 교회 (총 3부작)
부제: 푸코의 미시 권력과 들뢰즈의 리좀으로 읽는 문화 변혁
1. “나 하나 착하게 산다고 거대한 세상이 바뀔까요?”
지난 글에서 우리는 ‘평신도들이 일상에서 이뤄내는 작고 미시적인 문화적 대응’을 대안으로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냉소적인 반문을 던질 것입니다. “나 하나 직장에서 친절하게 굴고 선플 단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탐욕이나 혐오 구조가 정말 바뀌겠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문화를 억압하는 ‘힘(Power)’의 본질을 새롭게 파악해야 합니다.
2. 거대 서사의 종언, 그리고 스며드는 ‘미시 권력’
과거 기독교는 거대한 종교적 선언으로 세상을 단번에 계몽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 리오타르(J.F. Lyotard)의 말처럼, 현대는 “거대 서사(Grand Narrative)에 대한 회의”[1]의 시대입니다. 곧 거대하고 압도적인 지식인(혹은 거대 세력)의 시대가 끝났다는 선언으로, 대중은 강단의 거창한 구호에 더 이상 설득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통찰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푸코는 현대의 권력은 국가의 법처럼 거대한 것이 아니라, 무한 경쟁과 타인과의 비교 등 우리의 일상 속에 ‘모세혈관처럼’ 촘촘히 퍼져 있는 ‘미시 권력'[2]으로 진단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문화, 곧 혐오와 탐욕까지를 아우르는 세력은 바로 이 미시 권력을 통해 구성되고 작동합니다. 따라서 이에 대항하는 진정한 문화 변혁 역시 일상의 모세혈관 속에서 일어나는 평신도의 ‘미시적 저항’이어야만 하는 것이죠.
3. 수목형 제도를 깨는 ‘리좀(Rhizome)’적 탈주
이 미시적 저항이 어떻게 거대한 구조를 무너뜨릴까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리좀(Rhizome)'[3] 개념이 그 힌트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명령이 하달되는 전통적 제도가 ‘수목형 구조(나무)’라면, 리좀(뿌리 줄기)은 중심 없이 수평적으로 뻗어 나가며 생태계 전체를 뚫고 나옵니다.
감신대 교수이자 조직신학자 이신 최태관 교수님께서 지적하듯, 십자가의 은혜는 성도들의 삶 한복판에서 낡은 체제를 뚫고 일어나는 역동적인 ‘사건(Event)'[4]입니다. 자본주의적 탐욕 구조 속에서, 뜻밖의 환대와 무용한 사랑을 베푸는 성도들의 일상은 견고한 세상의 체계에 균열을 내는 거룩한 ‘도화선’이 됩니다.
4. 세상의 혈관에 침투하는 복음의 리좀이 되다
당신의 일상적 윤리는 개인의 도덕성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속의 미시 권력망 한복판에 침투하여 그 시스템을 고장 내는 가장 강력한 레지스탕스,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십자가 활동입니다. 생존 경쟁 대신 연대하고 긍휼의 언어를 사용할 때, 이 개별적인 저항들이 수평적으로 접속하며 복음이라는 거대한 리좀이 세상을 뒤덮게 됩니다. 세상을 변혁하는 문화적 역량은 강단의 세련된 설교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치열한 삶 속에 있습니다.
– 3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