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 바르트(Kral Brath)는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신앙관을 말했습니다. 구원사건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는 침공이기에, 인간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완전한 부자유, 오염된 자유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만나 구원을 받게 된 기쁨을 표현하는 것 외엔 없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에 환멸을 느낀 그가 칼빈 신학을 재해석 하면서 전적 타락의 구원관을 이야기하면서 발생한 논점이죠.

반대(?)로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아래로부터 위로의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인간 다움, 인간의 자기초월(원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진짜 상태)을 끌어 올리는 역할이기에, 인간은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야 하고, 이 때 구원의 섭리가 이뤄진다고 봤습니다. 바르트의 신전통주의 해석을 경계하면서, 바르트 식의 해석은 결국 인간을 완전 수동적 기계장치, 수용만 가능한 기계적 존재로 전락시킨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재는 그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의 “장”이 펼쳐진 세계 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만끽하며 자신을 세계에 열게 되는 보편적 역사가 하나님의 임재라고 봤습니다.
어렵게 썼는데, 간략하게 설명하면.
– 바르트: 무조건 하나님을 통해서만 구원성취
– 판넨베르크: 이미 펼쳐진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나와 타인, 세계 발견
이게 두 사람의 신앙관이고, 현대를 대표하는 일반적인 신앙 이해의 두 측면이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르트의 신앙관을 싫어합니다. 거기서 인간은 아무런 역할이 없습니다. 바르트는 “말씀의 신학” 을 개진하면서 “인간은 구원에 아무런 지분이 없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말씀” 이라고 하는 것도 싸그리 인간의 입과 손, 삶과 역사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비로소 “말씀” 이라고 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역할이 없다는 말은 말이 안되죠.
이런 이해에서 발생하는 악은, 결국 하나님 탓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바르트는 이러한 절대적 하나님만으로 인한 구원관을 확고히 하기 위해 악과 비극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무(하나님이 거부하신 그림자)’라는 모호하고 난해한 개념을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신다는 분의 세계에 어떻게 그런 “무”(악)가 존재 할 수 있는지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 때문에 불트만, 판넨베르크에게 바르트는 뼈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기도 했습니다. 결국엔 모호한 말 장난에 자가당착에 빠지는 순환논리의 모순에 빠진다고 봤거든요.
이 두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게 신정론, 그러니까 하나님의 옳으심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바르트 본인은 역사 속에서 나치에 치열하게 저항했지만, 그의 철저한 ‘위로부터의 신학’ 논리 구조를 그대로 따르면, 지금 일어나는 이 참혹한 전쟁 앞에서도 인간의 능동적 개입의 책임은 모순에 빠집니다. 결국 구원과 역사의 주도권이 모두 하나님께 있다면, 이 거대한 악의 구조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극도로 축소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라고 인식하는 모순에 빠지고 맙니다.
반면 판넨베르크(+바르트를 비판했던 실존주의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지금의 전쟁상황은 전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지 않아서 발생한 악행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장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창조의 원형을 깨달아 모든 피조물이 바라는 바 하나님 나라의 환원을 힘써야 할 인간들이, 이와 정 반대의 일을 하니 악이죠.
바르트는 분명 대가가 맞고, 20세기 최고의 신학자입니다. 그의 교의학은 역사적 가치를 넘어 모든 목회자의 필독서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진리이거나 그만 옳은 건 아닙니다. 현재의 상황들, 타인의 아픔을 하나님의 이름과 정의로 덮어버리는 것, 나에겐 정말 의로운 일이고 믿음의 고양감이 한껏 치켜 올라가는 일이겠죠. 하지만, 죽은 아이들의 부모에겐 저주이며, 부모를 잃은 아이에게는 무책임한 망발입니다.
바르트의 문제는 그의 신학에서의 논리적 모순이나 약점이 아니라, 유연성이 없다는 겁니다.
“나만 옳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 말을 할 때, 모든 비극이 시작됩니다. 지금 전쟁도 나만 옳다는 것에서 시작됐으니까요. 부디, 자신의 믿음은 지키되, 자기가 믿는 것만이 옳다는 생각은 지양하시는 가운데, 이 큰 슬픔이 가득한 시대를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