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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 1편] 내 기도만 하다가 지친 당신에게: 간구에서 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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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도만 하다가 지친 당신에게: 간구에서 관상으로

우리의 기도는 종종 허공을 치는 메아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다고 하지만, 실상 그 안에는 나의 이기적 욕망과 요구만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내 기도만 하다가 지친 우리의 실존에, 오랜 기독교 영성 전통은 ‘침묵’과 ‘듣기’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기독교의 오랜 영성인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인간 욕망의 투사로 변질된 이기적인 ‘간구’를 넘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관상기도’의 참된 의미를 현대 신학적 관점에서 묻습니다.

 

렉시오 디비나: ‘적용’을 넘어 ‘관상’의 자리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수도원 영성에서 비롯된 기도 및 묵상 방법으로, [독서 – 묵상 – 기도 – 관상]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대 QT와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데, 이것은 전통적으로 기독교 영성에서는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행위가 분리되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결정적 차이점이라면, QT의 마지막에는 ‘적용’이 있고 렉시오 디비나에는 ‘관상’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 관상과 적용의 차이는 글자로는 크지 않아 보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관상이란 ‘마음의 기도’라 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중점을 두는 순종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기도’의 단계를 통해 이미 나의 간구와 하나님의 뜻을 여쭙는 과정을 거쳤기에, 이제 침묵 속에서 성령님을 통해 타자(他者)이신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주실까 기대하며 기다리는 과정이 바로 ‘관상’입니다.

흔히 보수 복음주의에서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이유로 이 ‘관상’을 이단적 행위나 심리학적 명상에 불과하다고 배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 대대로 내려온 전통적 기도의 방법이자, 기도의 최종 단계입니다.

 

이기적 간구를 멈추고 참된 신앙으로 나아가기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날카롭게 지적했듯,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종교적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귀결되기 쉽습니다. 내가 하는 기도가 하나님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기도는 나의 결핍을 채워달라는 ‘간구’와 ‘요청’으로 도배됩니다.

현대 철학자 포이어바흐(L. Feuerbach)가 종교를 가리켜 “인간 내면의 결핍과 욕망을 신이라는 대상에게 투사한 것”이라고 비판했던 것처럼, 우리는 심지어 ‘믿음’조차도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청합니다. 얼핏 이러한 모습이 절대적 순종의 모범적 사례로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의 이기적 요구일 뿐이며, 내 삶의 실존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포장된 ‘수동적 은혜 강림의 요청’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 기도의 최종 단계인 ‘관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결코 믿음을 수동적인 것으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강리바이블러의 아바타

글쓴이 강리바이블러

강경석 목사 | 예당교회 담임, Re:Bible 총괄 디렉터 감리교신학대학교 Ph.D 수료. 딱딱한 신학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며, 성서를 입체적으로 읽고 삶으로 살아내는 여정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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