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예정론’.
전통적인 관점과 오해를 넘어, 예정론의 진짜 의미와 가치를 총 5회에 걸쳐 찾아가 보겠습니다.
이 글은 [질문하는 신학]에도 동시 연재됩니다.
여기서는 읽기 쉬운 축약본으로, [질문하는 신학]에서는 좀 더 깊이 읽을 수 있는 글을 게재합니다.
보다 더 깊은 이해를 원하시는 분들은 [질문하는 신학]의 글들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질문
예정론은 루터와 칼뱅 이후 개신교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완벽히 풀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정론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가’와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우리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왕의 결정인가, 운명인가?
우리가 흔히 아는 ‘이중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이미 결정해 두셨다는 생각입니다. 이 관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권위를 강조합니다. 마치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걱정이 생깁니다. “이미 다 정해져 있다면, 나는 그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로봇이나 꼭두각시에 불과한 걸까?” 하는 의문입니다.
나는 정말 벌레만도 못한 존재일까?
전통적인 예정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고 비하하게 만들고,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도 합니다.
틸리히와 바르트의 위로
여기서 우리는 현대 신학자들의 통찰을 통해 조금 더 희망적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폴 틸리히는 인간을 파괴해야 할 ‘병균’이 아니라, 잠시 하나님과 ‘소외된’ 존재로 보았습니다. 또한 칼 바르트는 예정론이 “누가 구원받느냐”를 따지는 무서운 심판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사랑받기로 선택되었다”는 기쁜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독재자가 아닌 ‘아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계획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인 파트너’로 대우하시며,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존중하십니다. 예정론은 우리를 꼼짝 못 하게 묶어두는 사슬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너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든든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셨고, 그 삶을 우리와 함께 멋지게 일구어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압하는 독재자가 아니라,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아빠’이자 함께 걷는 ‘동역자’이시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