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구원받을까?”에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로
21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칼 바르트는 예정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전의 예정론이 “하나님이 누구를 구원하고 누구를 버리실까?”라는 대상 찾기에 집중했다면, 바르트는 예정론의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가장 먼저 계획(예정)하신 것은 우리 개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바로 독생자 예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 안에서 우리 인류 전체를 사랑하기로 이미 결정하셨습니다. 즉, 예정론은 ‘심판의 대상 명단’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초대장’이 된 셈입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선택’입니다
바르트의 이런 생각은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를 줍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계획 안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칼 라너 역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안테나’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구원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미 선택받은 존재로, 그 사랑에 주체적,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자녀들인 것입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과의 동역
전통적 신앙관은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전적인 무력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현대 신학은 우리의 ‘응답’을 굉장히 중요한 신앙의 중심으로 여깁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시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이루는 동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정을 통해 우리에게 먼저 “사랑한다”고 손을 내미실 때, 우리가 기쁘게 그 손을 잡는 ‘실존적 결단’이 있을 때 구원의 역사가 우리 삶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함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수동적, 피상적 도구가 아닌 ‘인격적인 파트너’로 대우해 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존중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닫힌 과거가 아닌 열린 미래
예정의 현대적 이해는 결코 “모든 것은 이미 다 정해져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몰트만 같은 신학자들은 예정론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릴 자녀로 “이미”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정은 과거의 결정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펼쳐질 미래의 희망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가 구원받았을까?”라는 불안함에서 벗어나도 좋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선물로 받은 엄청나게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그저 감사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며 하나님과 함께 내 삶을 누리며 일구어가면 될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