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렇게까지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서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말, 어쩌면 입이 아플 정도로 당연한 소리라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의외로 대다수의 사람은 성서를 제대로 읽지 않습니다. 예전에 성서 읽기에 목마르다는 분에게 주석과 몇 권의 책을 권하며 깊이 있게 읽어보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무안하게도 “그렇게까지는 읽고 싶지 않습니다”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지식을 과신합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이라고 하죠. 진실이 무엇이든 자기가 믿고 확신하는 대로만 보고 듣는 것입니다. 성서를 읽을 때 이 확증편향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인간은 경험의 동물이라 외부 지식의 유입 없이 “그렇게까지는” 읽지 않는 성서 읽기의 결론은 늘 자기 고집으로 점철됩니다. 이 확증편향이 왜 무섭냐면, 첫째는 자기를 높이고, 둘째는 ‘나만 맞다’는 식의 독선과 전체주의를 양산하기 때문입니다.
2. 욥기 8장 7절의 비극: 문맥을 잃어버린 가짜 복
성서 기자는 매우 정교한 기법을 사용합니다. 때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1인칭으로 대입시켜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기법을 마주했을 때 정작 알아야 할 본질은 빼고, 자신에게 좋은 것만을 취득하는 과도한 해석을 내립니다.
이런 ‘잘못된 이입’의 가장 전형적인 예가 바로 욥기 8장 7절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구절은 사실 욥의 친구 빌닷이 고난당하는 욥을 비꼬고 조롱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은 이 구절을 ‘복의 약속’으로 믿어 왔습니다. 사업장이며 가정이며 온 천지에 이 구절을 걸어두면 복이라도 올 것처럼 말이죠. 즉, 비꼬는 말조차 “그렇게까지는”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복이 됩니다. 이건 능동적인 해석이 아니라 명백한 오역이자 오독입니다. 자기 지식 안에 갇힌 성서 읽기는 결국 이기적인 결론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3. 말씀 앞에 선 광인 : 회개가 사라진 현대 교회의 민낯
성서 읽기가 이렇게 변질되니 자연스레 설교도 그런 방향만 원합니다. 이제 교회의 설교에서 ‘회개의 외침’은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그런 설교를 하면 “왜 쓸데없는 죄책감을 심어주느냐”며 화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로지 복으로 끝내야 하거나, 교회의 부흥으로 결론지어야 하는 어거지 설교가 판을 칩니다. 확증편향에 빠진 청중은 자기가 원하는 ‘긍정적인 이야기’만 골라 들으며 그 어거지 설교에 부응합니다.
그 결과, 교회는 가짜 성서 해석으로 뒤덮였습니다. 예수님의 첫 가르침은 “회개하라”였는데, 교회엔 온통 복만 넘쳐나고 하나님은 복신(福神)으로 전락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기회주의적인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경고하고 심판하셨으며, 예수님은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를 만큼 단호하셨는데 말입니다.
확증편향으로 무장한 이들은 복잡하고 깊은 성서 해석을 싫어합니다. 누군가 자신의 견고한 해석을 해체하려 들면 화를 냅니다. 그렇게 교회는 고집 센 안하무인 집단이 되어갑니다. 자신의 ‘긍정’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부정하고 배제하며, 불법을 저지르고도 자기 확신 안에 갇혀 눈물 흘립니다. 신성모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근본 없는 용기로 무장한 광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4. 다시 처음처럼 : 나를 비우고 읽는 ‘말씀’의 자리
성서를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말씀’이라 표현하는 것도 그분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소통 창구(중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앞에서는 오직 “확신하지 못하는 미약한 나”만이 남아야 합니다. 그래서 늘 겸손해야 하고, 말씀 앞에서 자복하며 회개가 일어나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성도들의 평가가 두려워 떨며 설교단에 선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도 설교단에 설 때 늘 떨리지만, 저는 하나님이 두려워 떱니다. 오늘 설교를 하나님께서 만족스러워하실지 고민합니다. 성서와 설교를 대하는 태도가 온통 자기 위주인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성서는 늘 처음 읽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나라는 존재조차 내려놓고 읽을 때 비로소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온갖 이기적이고 확증편향적인 가짜 설교와 믿음이 사라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