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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ible 성경 다시 읽기

기독교인에게 중립은 없다 1

화려한 언변으로 치장해 중립을 마치 기독교 정신인 양 둔갑시켜도, 그건 그저 면피용 도덕적 알리바이이자 신학의 부재가 낳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중립은 결국 양비론입니다. 이는 불의한 권력에 면죄부를 주고, 비겁하게 침묵했던 자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꼴입니다.

본회퍼는 나치에 부역하고 방조하면서도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라며 도피했던 ‘중립적’ 교회를 향해, 그것은 “싸구려 은혜”라고 일갈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투투 대주교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부당한 상황에서 중립을 지킨다면, 당신은 박해자의 편을 택한 것이다. 코끼리가 생쥐의 꼬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는데 당신이 ‘나는 중립을 지킨다’고 말한다면, 그 생쥐는 당신의 중립에 결코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소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실 정도로, 약자를 기만하고 방관하는 일에 극도로 분노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라고는 고작 “중립” 따위입니다.
그곳에는 철저한 반성도, 치열한 저항도 없으며, 십자가도, 지극히 작은 자도 없습니다. 그저 힘 있는 기득권이 빠져나갈 탈출구를 뚫어주려 고래고래 소리치는 공허한 윤리이자 도덕적 파산에 빠진 허망한 헛소리들 뿐입니다.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혹은 받게 되는) 이유는 도덕적, 윤리적 타락 때문만이 아니고, 심지어 영적 부패 탓도 아닙니다. 그것은 약자를 향한 사랑 없이 불쾌한 소리만 내지르는 ‘울리는 꽹과리’가 되어버린 탓일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중립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프더라도 저항하고, 괴롭더라도 과거의 과오를 직면하여 뼈저리게 반성해야 마땅하거늘, 그런 고뇌는 온데간데없이 기껏 내뱉는 소리가 중립이라니요.

배부른 종교가 되어버린 기독교.
싸구려 은혜와 명목 상의 교인들이 뒤덮어버린 교회.

주여.

강리바이블러의 아바타

글쓴이 강리바이블러

강경석 목사 | 예당교회 담임, Re:Bible 총괄 디렉터 감리교신학대학교 Ph.D 수료. 딱딱한 신학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며, 성서를 입체적으로 읽고 삶으로 살아내는 여정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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