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기고만장함의 근원, 성경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이 끝없이 교만한 이유를 뒤집어 보면, 성경을 코란(쿠란)처럼 대한다는 공통된 특징이 나옵니다. 성경은 낱자와 받침, 점 하나까지 일점일획 오류와 오기가 없는 완벽한 책, 하늘의 글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죠. 이걸 성경 무오설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기독교보다는 이슬람교에서 더 확고하게 받아들여지는 “설” 입니다.
코란은 대예언자 무하매드가 알라에게 받은 글이라고 해서, 그 내용은 물론, 그 내용을 적은 아랍어까지도 신성하게 여깁니다. 최근엔 좀 풀려서 번역도 하고 그러지만 원래는 번역도 불가했었습니다.(성경도 특정 언어만 신성하다고 해서 히브리어-유대어, 헬라어-고대 그리스어, 라틴어로만 존재했었던 흑역사가…) 이러한 성서에 관한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게 되면 성서를 신처럼 모시게 됩니다. 그래서 이 코란의 원본을 모신 “메카”가 이슬람의 성지가 됩니다.
기독교를 비롯, 야웨 종교 계열은 아예 이런 일이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성경의 원본이 단 한 권도 없기 때문이죠. 신, 구약 예외 없이 전부 사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성경의 절대무오설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도박같은 일입니다. 나중에 좀 더 권위 있는 복사본이 나오거나 원본이 발견되어서 그 내용이 완전히 틀려지면 뒷감당 어쩔까요?
그래서, 성경은 외형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모세오경), 언약(율법서~시가서), 로고스(예언서~복음서), 예수(사도행전~바울서신), 그리스도(서신서), 성령(사도행전~로마서), 삼위일체(복음서~요한서신), 하나님 나라(계시록), 그리고 인간과 사랑(성경)으로 나아가는 이 규모와 과정을 모르면, 성경은 그냥 거룩하고 고결한 절대 불변의 “텍스트” 일 뿐입니다. 그냥 텍스트. 뭔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고 할지라도 텍스트. 종이 쪼가리, 문자 덩어리. 그런 텍스트에 거룩과 영광을 갖다 붙이니, 맨날 교만하고 화만 내죠. 텍스트를 어떻게든 옳게 유지하고 있어야 하니까.
성경대로? NO, NO 텍스트대로
목사들이요, 설교대로 살아야 하는데 라면서 막 고뇌하고,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합니다.” 라고 설교하죠. 그런데요, 그 한 영혼은요,
동성애자여서도 안되며, 다른 종교인이어도 안되고, 다른 종파인이어도 안되고, 하나님을 하느님이라고 말해도 안되며, 다른 교리를 언급조차해도 안되고, 다르게 생각해도 안되며, 다른 정치적 관점이나 사상도 가져서도 안되며, 성별이 달라도 안되고, 어려도 안되며, 중독자도 안되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어도 안되며, 교회나 목사의 사상과 달라도 안되며, 교리(혹은 교의)적 판단보다도 귀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텍스트대로만 살거나 살고자 하는 율법적인 사람의 영혼만 선택적으로 온 천하보다 귀한데, 그 영혼도 성경 글자와 거기서 비롯된 다른 글자보다는 덜 귀한, 뭐 좀 그런 상태” 라고 설교해야 설교대로 사는 겁니다.
또, 성경에서는 막 세례 받고 싶다고 그러면 그 자리에서 주고 그러잖아요. 심지어 예수님도 그냥 세례요한한테 막 쳐들어 가셨잖아요. 예수님이야 40일 고생하셨지만, 세례요한이 그걸 알겠어요? 요한이 입장에서는 사람들이랑 알콩달콩 세례 잘 집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후광 날라오고 거룩한 효과음 같은 거 들리더니 주님이 오셨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긴장하고 당황했겠습니까? 성경에서 세례가 이렇게 급작스러운 이벤트성이 있어요.
그런데 막상 우리가 세례를 받으려면 준비 과정(학습 따위 같은)이 필요하고, 그 과정의 자격을 얻으려면 교회 출석을 빠짐없이 부지런히 몇 개월~몇 년 이상 해야 하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이런 것들을 다 꿰뚫어 보시고 시험 과정도 준비하셨나 봐요. 그래서 교회들은 다 이걸 고대로 행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건 ‘텍스트’에 없단 말입니다. 이상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인정한다” 라면서 온갖 것들에 가치를 부여해서 그걸 실천하면서 살아요. 성경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했는데, 있어요.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더 귀한 게 수두룩 하게 있어요.
이거 어디서 보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죠. 걔네들한테 사람 목숨은요, 민족성보다 못하고, 율법보다 못하며, 자신들의 가치판단보다 못해요. 그래서 이 중에 뭘 어기든 그냥 죽여요. 젖먹이도.
그러니까 지금 기독교의 상태는 뭐다? 유대주의와 시오니즘의 비참한 결합이 낳은 율법주의의 사생아들이 판을 치는 세계관에 지배당하고 있다.
이 정도 되겠습니다.
“성경” 이냐 “말씀” 이냐
신약성경의 2/3 가량을 썼다고 여겨지는 바울은요, 자기 골육이 구원 받으면 자기는 지옥에 가라고 해도 가겠다고 해요. 성경의 주인이신 예수님은요, 성경 주인인데 죽어요. 성경보다 못한 그 “한 영혼”을 위해서요. 성경 텍스트를 쓰고 그 텍스트의 주인공이자 주인이, 텍스트만도 못한 인간들을 위해서 죽어요.
이야~! 성경은 참 모순적이네 싶으실 거예요. 왜 모순적이냐? 제대로 읽지 못해서지 뭐겠어요.
우리 기독교, 야웨 계열 종교는요, 신학이 발전함에 따라 굉장히 많은 인간군상을 비추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신학의 범주가 어마어마하게 넓어지고, 언어도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그런 파생효과들 속에서 유일한 하나의 공통점은요, 역사는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겁니다. 이게 학자와 사상에 따라, 하나님이 어떤 역할과 위치, 어떤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지는 달라져도, 하나님 안에 역사가 존재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성경에 단 한 권의 원본도 남지 않았다는 것은, 그게 필요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성경 자체가 우상이 되는 일을 아예 원천적으로 막으신 거죠.
우리는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데, 이게 사실 하나님에 대한 굉장히 큰 결례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성을 직접적으로 “말씀”에 정착시켜 버린 거거든요. 그럼에도 이 말이 성경에 남은 것, 성경에서 진리가 된 것은, 성경 글자 자체가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 숨쉬는 핏덩이와 숨결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의 삶 한 가운데 뛰어 들어오신 그 사랑이 “진짜 말씀” 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주신 겁니다. 이걸 모르면, 성경은 코란과 다를 바 없는 메카적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마저 뛰어넘는.
그래서, 다시 성경으로
성경을 제대로 읽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분명 같은 성경을 읽고 있어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우상의 글자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진짜 살아 숨쉬는 “말씀” 이 되는 차이가 발생하거든요. 문자가 아닌 살아 숨 쉬는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저와 함께 만나 보시죠. 현실적이고 실존적인, 정말 내 삶과 영혼과 함께 하는 성경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이제 시작 될 성경 묵상 글들은 제 개인적인 묵상으로, 목사로서도, 신학자로서도 아닌 한 사람의 하나님의 자녀이자 교회의 성도로서 묵상하는 글입니다. 어떤 틀에도 묶이지 않은 자유로운 묵상의 글들을 통해 함께 깊고 오묘하신 말씀의 숲을 함께 거닐어 보시죠. 매주 토요일, 함께 그 시간을 누려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