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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ible 성경 다시 읽기

나훔 2:1 “바벨의 고립”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 (나훔 2:1) 내가 쌓아 올린 안온한 세계가, 실은 나를 가장 철저히 고립시키는 바벨탑이었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불안을 지우려 끊임없이 스펙을 쌓고, 철저히 자신을 계발하며 안정을 구축하려 애씁니다. 앗수르 역시 주변을 점령하고 강제로 종속시키며 모든 자원을 모아 거대한… 나훔 2:1 “바벨의 고립” 계속 읽기

기독교인에게 중립은 없다 2: 정답을 독점한 종교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서론] 거룩한 결핍의 시작: 사랑이 허락한 틈 전통적 기독교 세계관에서 세계는 본질적으로 결핍과 회복의 순환관계를 가집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악(결핍)을 덮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 옷이란 어떤 동물을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완벽했던 세계에 ‘죽음’이라는 치명적 결핍을 야기했고, 아담과 하와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완벽함 속에 결핍, 곧 발타자르가 말했던 사랑의… 기독교인에게 중립은 없다 2: 정답을 독점한 종교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계속 읽기

[질문하는 신학 3부작 기획 연재, 제 3부] 성도를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교회의 낡은 거푸집을 깨뜨리다

[Re:Bible 기획 연재] 세상의 문화 앞에서 길을 잃은 한국 교회 (총 3부작) 부제: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교회는 문화를 재창조할 수 없다   1. 성도에게 짐을 지우기 전, 교회가 먼저 답해야 할 질문 우리는 2편에 걸쳐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짜 힘이 ‘거대한 기독교 자본’이 아니라 ‘평신도들의 일상적 역량(리좀적 저항)’에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평신도들은 뼈아픈 역질문을… [질문하는 신학 3부작 기획 연재, 제 3부] 성도를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교회의 낡은 거푸집을 깨뜨리다 계속 읽기

달란트 유감 시리즈 ① “우리 아이 달란트를 찾아주세요!”, 가장 소름 돋는 오역

성경 속 ‘달란트 비유’를 사람의 재능이나 직업 진로로 해석하시나요? 은혜의 탈을 쓴 기복주의와 능력주의의 끔찍한 진실을 파헤쳐 봅니다. “하나님이 주신 너만의 달란트를 찾아서 훌륭하게 키워내야 해!” 주일학교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이죠? 부모님들은 아이의 달란트를 찾기 위해 적성 검사를 하고, 청년들은 자신의 달란트가 뭔지 몰라 좌절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정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진로 상담’을… 달란트 유감 시리즈 ① “우리 아이 달란트를 찾아주세요!”, 가장 소름 돋는 오역 계속 읽기

헌금 딜레마: 부패한 교회에 내 돈을 바쳐야 할까?

※ 이미지를 오른쪽으로 넘겨보세요 헌금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상처받은 당신을 위한 처방전 “교회가 타락했으니 헌금도 안 내겠습니다.” 당신의 헌금은 율법도, 면죄부도 아닙니다: 내 생존의 젖줄(돈)을 끊어내는 가장 거룩한 실존적 저항.   들어가면서: 왜 헌금 때문에 상처받게 될까요? 최근 인터넷을 보다가 현직 목사님께서 쓰신 흥미로운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기형적인 헌금 운용과, 축복을 조건으로… 헌금 딜레마: 부패한 교회에 내 돈을 바쳐야 할까? 계속 읽기

나훔 1:15 “원수가 무너진 폐허 앞에서”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나훔 1:15) 원수가 무너진 폐허 앞에서 우리가 쥐어야 할 것은, 복수의 칼이 아니라 성찬의 잔입니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이들이 무너지면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달려가서 통쾌하게 밟아주고 싶어지죠.… 나훔 1:15 “원수가 무너진 폐허 앞에서” 계속 읽기

기독교인에게 중립은 없다 1

화려한 언변으로 치장해 중립을 마치 기독교 정신인 양 둔갑시켜도, 그건 그저 면피용 도덕적 알리바이이자 신학의 부재가 낳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중립은 결국 양비론입니다. 이는 불의한 권력에 면죄부를 주고, 비겁하게 침묵했던 자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꼴입니다. 본회퍼는 나치에 부역하고 방조하면서도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라며 도피했던 ‘중립적’ 교회를 향해, 그것은 “싸구려 은혜”라고 일갈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투투… 기독교인에게 중립은 없다 1 계속 읽기

[질문하는 신학 3부작 기획 연재, 제 2부] 거대 서사가 무너진 시대, 평신도의 일상은 어떻게 세상을 뒤집는가?

[Re:Bible 기획 연재] 세상의 문화 앞에서 길을 잃은 한국 교회 (총 3부작) 부제: 푸코의 미시 권력과 들뢰즈의 리좀으로 읽는 문화 변혁   1. “나 하나 착하게 산다고 거대한 세상이 바뀔까요?” 지난 글에서 우리는 ‘평신도들이 일상에서 이뤄내는 작고 미시적인 문화적 대응’을 대안으로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냉소적인 반문을 던질 것입니다. “나 하나 직장에서 친절하게 굴고 선플 단다고… [질문하는 신학 3부작 기획 연재, 제 2부] 거대 서사가 무너진 시대, 평신도의 일상은 어떻게 세상을 뒤집는가? 계속 읽기

“나만 옳다!” 신앙의 함정: 칼 바르트와 판넨베르크

칼 바르트(Kral Brath)는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신앙관을 말했습니다. 구원사건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는 침공이기에, 인간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완전한 부자유, 오염된 자유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만나 구원을 받게 된 기쁨을 표현하는 것 외엔 없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에 환멸을 느낀 그가 칼빈 신학을 재해석 하면서 전적 타락의 구원관을 이야기하면서 발생한 논점이죠.… “나만 옳다!” 신앙의 함정: 칼 바르트와 판넨베르크 계속 읽기

나훔 1:2, “사랑할 사람 나 하나뿐인 것처럼”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나훔 1:2 상반절)   세상이 당신의 존엄을 함부로 짓밟고 상처 입힐 때, 하나님은 재판관으로 계시지 않습니다. 나훔서는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분’으로 그립니다. 앗수르가 약자들을 유린한 것을, 성경은 사랑하는 신부를 향한 끔찍한 범죄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에게 그것은 단순히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이의 영혼을 망가뜨린 용서할 수 없는 폭거였습니다. 내 신부를 망가뜨린 세상을… 나훔 1:2, “사랑할 사람 나 하나뿐인 것처럼” 계속 읽기